<매그넘 코리아>가 본 우리의 오늘, 우리는 유연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시 종료 며칠을 남겨두고 찾아가는 버릇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매그넘 코리아 전시회>가 2008년 7월 4일부터 진행되었다. 10만 명 이상이 찾았고, 미국의 <타임(Time)> 지도 이 전시회에 대한 특별한 보도를 했단다. 세계 사진계의 최고 스타들이라는 이들의 다큐멘터리 사진과 저널리즘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데, 국내의 사진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애호가들에게도 매우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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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가 보도한 한국의 매그넘 전시회--대박났다고 했다.)


전시회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엄마들도 많았고, 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진과는 관계없이 살아왔을 법한 어르신들께서도 나들이를 하셨다. 고작해야 동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거나 아기 돌 사진을 찍을 때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을 것 같은데 연령에 관계없이 또 전문성과 무관하게 많이들 오셨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들기 때문에 집중해서 볼 여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신호다.


“한국은 매우 독특한 나라이고, 고요한 동방의 이미지에서 역동적인 에너지가 숨쉬는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이 존재하는 나라”라고 미국 원로작가 엘리엇 어윗이 말했다고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100만이 서울 도심 한 복판에 모이는 것이 일도 아닌(?) 나라이고, 그러다가도 순식간에 잦아드는 것이 역동성이라고만 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한국은 사진작가들에게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나라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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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사진...)

 


“사진이란 대상의 몸과 물체가 작가의 영혼과 만나는 것”이라고 정의한 어떤 작가의 소개를 보았다. 그림과는 달리 사진은 사실이면서 동시에 또 사실이 아니다. 작가의 카메라 앵글의 의해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될 수 있지만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한국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정부가 요란하게 외쳐대는 건국 6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좋은 전시회가 되기도 한 것 같다.


작가전에서는 사진을 잘 모르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해석이 필요한 섹션이었다. 사람들은 그 사진의 장소가 어디인지에 대해 궁금해 할 뿐,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는 언뜻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장에는 좋은 카메라인 것처럼 보이는 장비들을 들고 온 젊은이들이 많았다. 요즘에 그런 카메라 하나 정도는 모두 가지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붐이 일고 있는데 저변도 많이 넓어졌다고 한다.


이번 여름에는 한국 영화들이 아주 선전을 했다.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한국적 정서를 통해 한국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의 재미를 선사한 작품들이 눈에 띠게 있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님은 먼 곳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다찌마와 리> 등 나름대로 헐리우드의 공세에 선전을 했다는 평이다. 가을에는 서울을 무대로 멋진 공연들이 준비되고 있다. 서울은 이제 국제적인 문화도시로 변화하고 있고, 전반적인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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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 초청받은 놈놈놈의 포스터)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제 문화의 멋과 맛을 경험한 이들의 수준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문화적 감수성에 노출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유연해질 것이고 자신의 일상을 문화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욕구가 높아질 것이다. 아직은 사회적 동조 심리에 의해 문화를 하나의 장식품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점차 문화사회, 문화정치, 문화적 삶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사회는 점 점 연성화되고 유연해지는 정치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는 것도 건국 60주년을 떠들어 대는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적 실용주의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한국의 경직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경쟁해서 살아남는 자에게만 실용의 혜택이 돌아가는 판세에서는 사회적 지지기반이 약하고 소외된 이들이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매그넘 코리아>가 그린 한국의 자화상은 그런 모순을 정직하게 포착해냈다.


어디나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법, 그것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먼저 암을 돌아보는 정치가 되면 좋겠다. 일방적인 소통이 마치 권력의 특권인 양 생각하는 것은 구시대적이다. 국민의 문화적 지수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지금, 서로 싸우지만 말고 상식적인 대화를 통해 합리적 합의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좋겠다. 방송과 신문에 매일 등장하는 분들이 제대로 해 줘야 기왕에 시작된 문화적 삶의 매력이 반감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다가는 우리가 싸구려 문화시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적 삶을 마치 유행처럼 따라하고, 그러면서도 정치적 경직성은 해소되지 않아서 타인에 대한 관용과 배려에는 관심이 없어진다면, 그래서 일등을 해야만 하는 팍팍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면 아무리 좋은 전시회를 열고 좋은 음악을 서울 곳곳에서 연주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천박한 낭비일 뿐이다.


경직된 것으로 치자면, 한국교회만큼 하랴! 소수의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따르지 않으면 불신앙이 되는 현실이 아직도 여전하다. 그렇지만 교회 밖의 상황과 비슷한 것이 이미 성도의 대다수는 충분한 문화적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성도들이 교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동의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그들은 이미 다양한 경험과 교육을 통해 세상의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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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사진... )

 


이런 일이 지속되다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 역시 천박한 욕망의 분출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교회 밖에서의 삶과 교회 안에서의 삶이 경직되게 구분되도록 강요받는다면,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오로지 순종하는 법과 복을 구하는 법만 배운다면, 그들의 삶에서 신앙이란 그저 장식품에 불과하여 한국사회의 천박한 실용주의의 변주에 몸을 맡기고 일등이 되라는 주술에 걸려 춤추는 우스꽝스러운 광대 노릇이나 하게 될 것이다.


한 장의 그림, 한 장의 사진으로도 오늘을 말하고 세상을 담는다. 인간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해체되지 않는 인간의 인간다움, 공간의 경직성마저 유연하게 만드는 사람의 냄새를 사진으로 포착하는 그들의 놀라운 통찰력을 잠시 들여다보면서 우리 교회가 우리 백성에게 이렇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실하게, 통찰력을 가지고, 그리고 품위 있게, 정직하게, 무엇보다 유연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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