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는 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야 마는구나 싶어 걱정입니다. 전통 종교로서 유교나 불교, 무교 등이 자리 잡고 있던 조선에 천주교와 기독교는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부활을 위해 큰 공을 세우면서 박해와 핍박의 고초를 이겨내고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전하며 세운 학교와 병원은 사람들을 일깨우고 고쳤으며, 절망과 비극의 나락에서 한 줄기 소망을 발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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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지도자 33인과 광화문 독립만세 사진)

 

3.1 운동은 세계사에 빛날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쾌거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모든 종교인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력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서로 다른 종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충성하는 분은 다르지만 눈물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해 희생하고 용기를 불어 넣기 위한 명분에는 모두 동의하였던 것입니다.


해방 이후, 기독교 우파의 복음주의적 신앙을 고백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은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합니다. 친일파를 제거하지 못한 정권은 반공을 국시로 삼으면서 친일파와 기독교 우파의 결합을 조장하게 됩니다. 친일파들은 이승만 정권에 기생하면서 끝까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기독교 세력을 동원하게 되고, 한국기독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된 우파적 교회들은 박정희 시절까지 이어지면서 수적 성장을 거듭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이제 우리나라의 주류 종교입니다. 민족종교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미 2세기가 흘렀으니 분명 기독교는 이제 우리 종교입니다. 여전히 기독교를 서양 종교로 여기는 이들은 혹시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논리를 추종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야 이미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문제는 정서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여전히 이방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히 별난 사람들이라고 여기고 이방인과 같이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미디어의 영향도 없지는 않겠지만, 한때 광적이고 미신적인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로 비춰지더니 요즘에는 무례하고 배타적인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져서 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최악의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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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종교인들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 정의구현사제단)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 관련 이슈가 끊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긍정적인 것들이 아니고 대체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특정 교회의 인맥, 정부 인사의 친기독교 발언 및 행동 등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흔들림 없는(?) 일관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진보성향의 주간지는 이명박 대통령이 현 시국을 ‘성전(聖戰)’으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도했습니다.(한겨레 21, 2008. 7. 8)


촛불 정국으로 수세로 몰린 이명박 대통령이 결국 사과를 했지만, 그 후 보수언론과 경제단체, 그리고 보수적 기독교 지도자들의 비판과 결집에 힘입어 현 정국을 사탄과의 전투로 인식할 수 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보수성향의 언론인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촛불 정국은 천주교를 시작으로 불교와 기독교의 진보성향 성직자들을 거리로 불러냈었습니다. 종교인들이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닫으면 안 된다는 단순한 생각에 그저 그들의 소리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고 정화시켜서 투쟁과 갈등이 아니라 평화와 질서의 운동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인내심이 없었고, 사람들도 지쳐갔던 것입니다.


최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속한 정의구현사제단의 몇 신부님이 갑자기 안식년 조치를 받으면서 그 간에 벌인 이들의 행보에 천주교가 공식적으로 제동을 걸었습니다. 자신들의 문제로만 인식했던 탓일까요? 아니면 국민들에게 천주교의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요? 마냥 부럽던 그들이 갑자기 측은해지기도 했습니다. 하긴 신부님들 형편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불교계의 사정은 요즘 매우 복잡합니다. 스님들이 산방을 뛰쳐나와 21세기 대명천지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종교탄압 중지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연일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친 기독교정책을 중단하지 않고 불교계에서 요구한 조건들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현 정권의 지지기반인 영남권이 대체로 불교권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리 만만치 않은 사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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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불교탄압을 중지하라고 외치는 불교도들....연합신문 사진)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종교 간 갈등이 이제 현실화되는 것일까요?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종교라 할지라도 사회의 질서 이데올로기와 동일하게 취급되기에 이미 형성된 시장에서 경쟁하고 우월한 의미체계임을 인정받고 선택받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관련 문제들을 다른 시각에서는 시장상황에서 경쟁을 통해 의미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싸우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누가 가장 다원주의 시대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요?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것 같아 우리 기독교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연성과 수용성, 그리고 명확한 정체성과 사회적 책임, 또 개개인의 개별적 영성과 공동체 의식 등을 고려할 때 준비된 부분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이 더 많습니다. 특히 다원주의 사회에서 유연성은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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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s Across the Divide Derry/Londonderry by Josef Locke)

나와 다른 이의 생각에 대처하는 방식은 그 종교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오직 구원의 길이시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증거하는 것과 인종과 종교, 연령과 성별의 차별 없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은 다른 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화해자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갈등과 첨예한 충돌을 조정하자면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는 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기독교 내부의 갈등이 여전히 첨예한 상황에서 다원주의 시대를 대응하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조명하기란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안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데, 이 갈등이 더욱 고조되기만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을 해결할 어른도, 세력도 없어 보이니 답답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의 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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